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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근황 : 6월말 ~ 7월초

by Junhyeok 2012. 9. 23.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팬서비스로 명가네식품 문이사님 소개로 지난 여름에 다녀왔던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원래는 다녀온 직후부터 계속 써볼려고 했는데 지나치게 잘써보겠다고 마음먹었다가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 보니 어느새 훌쩍 두 달이나 지나서 그 때의 느낌과 기억이 많이 지워져서 잘 될지는 모르겠다.

 다녀온 곳은 경북 성주군 대가면이다. 기차를 타고 왜관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가야될 정도로 작은 마을이다. 처음부터 주소지를 알려줬으면 잘 찾아갔을텐데 전화로 길 설명을 받다보니 한참 헤맸던 기억이 난다.

 왜관역 정류장에서 나를 당황시켰던 문구. 버스 터미널처럼 표를 사서 타는 시스템이었다.

대가면 사무소.

조용한 동네다. 비닐하우스는 참외밭이다. 그렇다.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성주 참외 생산지. 전국 생산량의 70~8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에 굴러다니는게 참외고, 트럭들도 대부분 참외를 싣고 다닌다. 생산지라 그런지 평소 시장에서 보던 것들보다 훨씬 큰 것들이 눈에 많이 보였다. 한 박스 사오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

멀리서 보면 이런 느낌.

본격 작업 장비 등장. 산림청에서 숲가꾸기라는 사업을 하는데 거기에는 가지치기, 어린나무가꾸기, 풀베기, 덩굴제거, 솎아베기 등등의 작업이 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주워듣고 검색해본 바로는 산림청 - 지방자치단체 - 입찰을 따낸 기업 - 용역업체 - 인부의 단계로 돈이 내려오는 듯 했다. 내가 했던 작업은 풀베기였고 숙식제공에 일당은 초보자라 10만원을 받았다. 풀베기는 조림사업으로 산에 심어놓은지 몇 년되지 않은 나무들 사이에서 자라난 잡초와 잡목들을 베어네는 작업이다.

처음 듣기로는 예초기 메고 풀베는 일이라고 해서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갔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산비탈에서, 풀이라고 하기 힘든 나무들까지 다 쳐내는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는 원래 심어놓은 나무들을 다른 잡초와 나무들이 다 덮어버려서 뭘 잘라야하고 남겨야하는지 찾기도 힘들 지경.

 위의 사진처럼 뭐가뭔지 알 수 없는 곳을 작업해서 아래 사진처럼 필요한 나무만 남겨놓는 일이다.

0123456789

다녀온 나도 뭐가 뭔지 알아보기 힘들지만 일단 작업 중간중간에 휴대폰으로 찍어본 사진들.

더위에 고생하고

풀독이 올라서 고생하고

기계 진동에 손까져서 고생했다.

 작업은 아침 일찍, 대략 6시부터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5시쯤에 일어나서 대충 씻고, 밥 먹고, 장비를 챙긴다. 그렇지만 하다보면 30분쯤 늦어지고, 현장에 도착해서 담배 한 대씩 피면 제 시간에 시작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12시가 조금 되기 전에 오전 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오후 작업에 들어간다. 대략 5-6시 사이에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밥을 먹고 씻고 하루 일과 끝.

 작업자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어렸다. 다른 사람들은 40대 후반에서 70된 할아버지까지 있었는데, 저마다 한 때는 잘나갔던 사람들이다. 할아버지는 병원 원무과 같은 곳에서 일했던 것 같은데, 자기가 마치 의사였던것 마냥 말을 한다. 그러다 누가 자세하게 캐물으면 말을 흐린다. 작업자들이 마실 물과 예초기에 들어가는 기름을 갖다주는게 일이었는데 귀가 어둡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건지 불러도 대답이 없기 일쑤다. 게다가 작업이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면 물통과 기름통을 옮겨놓고 짧은 거리를 왔다갔다하면 될텐데 처음에 두었던 자리까지 왔다갔다하면서 힘들게 일을 한다. 그래서 다들 짜증도 많이 내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저 나이에 먹고 살겠다고 힘들게 일하는데 이해해줘야 하지 않겠냐면서 집에 보내지는 않았다.

 일은 굉장히 힘들었다. 나름대로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첫 날 작업 시작 후 30분 만에 기진맥진했고, 5분을 일하면 10분을 쉴 정도로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깨가 너무 아팠는데, 이틀 정도는 정말 그만두고 내려오고 싶은 걸 겨우겨우 참아냈다. 3일째 겨우 적응이 되었고, 비가 와서 하루 정도 쉬었더니 다음 날부터는 어느 정도 할만했지만 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 아저씨들이 작업하는 걸 못따라가니 참 부끄러운 날들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인데, 가족들한테 갖다줘봐야 잘 알아주지도 않는게 아버지들의 현실. 재수하는 아들은 돈 필요할 때만 전화가 오고, 얼굴보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참 마음이 아프다가도, 일 끝나고 저녁이나 쉬는 날에 술 먹고, 다방같은 곳에서 모르는 여자들한테 다 써버리고 하는 걸 보면 왜 이렇게 사는지 알만하다 싶기도 했다.

 원래는 일주일 정도 있을 계획이었는데, 중간에 작업이 끝날때까지 있기로 이야기를 했다가 결국은 3-4일 정도 남은 작업을 두고 중간에 내려와버렸다. 여러가지 이유로 분위기가 나빠져서 굳이 끝까지 남아있고 싶은 마음이 없었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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