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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새로운 리그에 대한 상상

by Junhyeok 2008. 3. 12.

  축구라는 스포츠의 매력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는 요소를 하나만 들자면 '결과의 불확실성'이 아닐까 합니다. 경기의 결과가 하늘로 던져올린 공이 땅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만큼 뻔하다면 별로 흥미를 끌 수 없을 것입니다. 축구뿐만이 아니라 상대방과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라면 경쟁과 불확실성이 재미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흉내내기도 힘든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런 감탄할만한 운동 능력을 보고 싶다면 기계체조나 써커스를 보는게 더 재미있을겁니다.

  따라서 스포츠에는 이런 불확실성을 높여주기 위한 여러가지 장치가 있습니다. 연령, 체급, 성별 등을 제한해서 최대한 서로 비슷한 실력의 선수들이 경쟁할 수 있도록 합니다. 프로축구의 경우에는 리그간 승강제나 하위팀에게 우선권을 주는 신인 드래프트 같은 방법으로 이를 조정합니다. (쓰고보니 K리그는 이런 장치가 없어보이네요.) 토너먼트 방식의 컵대회도 강팀의 우승확률을 낮추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의 유럽 각국 리그의 순위를 살펴보면 이런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리그마다 몇 개의 팀만이 우승할만한 전력을 유지한 채, 그 외의 팀들과의 경기는 대부분 승리하거나 비기고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는 서로간의 경기 결과가 좌우하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현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자금력이 성적으로 직결되는 경향이 더욱 짙어진 현대에 와서는 기존 강팀들은 손쉽게 많은 자금을 지원받고, 이 자금으로 좋은 선수를 사들여서 좋은 성적을 내는 순환이 반복되면서 리그 내에서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는 것 입니다.

  최근 잉글랜드 2부리그의 반슬리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빅4라고 불리는 리버풀과 첼시를 연달아 꺾고 FA컵 4강에 오르면서 돈이 전부가 아니며 아직까지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소수의 팀들만이 리그의 우승을 노릴 수 있다는 명제가 유럽의 전체적인 경향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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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를 꺾고 기뻐하는 반슬리 팬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챔피언스리그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각 리그의 상위권 팀들만이 진출하는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어떤 팀이 이길지 쉽게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게 됩니다.

  그래서 유럽 전체리그를 통합해서 진정한 의미의 챔피언스리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상상해봅니다. 현재의 챔피언스리그는 이름과는 다르게 리그가 아닌 토너먼트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경기 수도 적고 참여한 모든 팀들이 서로 경기를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하는 경기를 보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리그마다 상위권 팀들을 뽑아 20개팀 정도로 새로운 리그를 진행한다면 그야말로 꿈의 리그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이동거리가 길어지고 매경기 쉽지 않은 팀들과 만나는 등 부담이 될지도 모르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매우 재밌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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