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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책

『경제학의 향연』폴 크루그먼 - ①

by Junhyeok 2009. 10. 4.
  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의 향연』을 다시 읽고 있다. 한국어판 제목은 원제목인 Peddling Prosperity 와는 의미상 다소 거리가 있어보이는데, 지난 수십 년 동안 경제학계에서 벌어진 지적 논쟁의 흐름을 다루고 있는 책의 성격을 고려해서 역자들이 붙인 제목이 아닌가 싶다. 원래는 사놓고 책장에 꽂아두기만한 책 중 한 권을 골라 읽으려고 했는데, 문득 어릴적 읽었던 세종대왕 전기에서 책 한권을 백번씩 읽었다는 내용이 생각나 다시 집어들었다. 이번이 아마 세 번째인거 같은데 책 날개에 인쇄된 '현대의 고전'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보면 볼수록 잘 쓰여진 책이다.

  절반 정도 읽었는데 인상적인 두 부분을 소개해볼까 한다.

  우리가 보수주의 집권기의 성장 기록을 분류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 기본 개념과 한 가지 기본 원리만 이해하면 된다. 개념이란 경기 순환이라는 측면과 경제 능력의 성장이라는 측면, 즉 이른바 후퇴와 회복이라고 하는 단기 경기 파동과 경제 전체의 장기 상승 경향을 구분하는 것이며, 그리고 원리란 보수주의 정책의 성공 여부는 경기의 단기 상승과 하강 운동이 아니라 경제의 장기 상승 경향이 얼마나 가속화되었는가에 따라 측정된다는 것이다.[각주:1]

  유권자들이 대통령을 재임 중 이룩한 경제적 성과로 판단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4년 임기 동안의 성장률을 지배하는 것은 경기 순환의 부침 - 이는 행정부의 잭임이라기보다는 주로 연방준비이사회의 책임이다 - 이다. 그런데 유권자들이 대통령의 전체 재임 기간이 아니라 단지 선거 전의 몇 분기 동안의 경제 성장률에 근거하여 투표한다는, 즉 짧은 기억만 갖고 투표한다는 익히 입증된 성향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그러므로 그들의 정책과는 거의 상관없이 주로 단기적 경제난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미 카터와 조지 부시에게는 일말의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각주:2]

  아무래도 미국의 과거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입시켜볼 필요가 있는데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이명박 대통령과 지난 대선의 이야기가 적절한 예가 될 것 같다. 지난 대선의 승부를 결정지은 가장 큰 이슈가 경제였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내가 볼 때)'민주화와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과제가 앞선 대선들에서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는 느낌이 강했고, 나라의 경제 성장은 (이전 시대에 비해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적임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선거에 승리하였다.

  선거 전의 TV토론 내용을 돌이켜보자면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당선되기만 하면 저절로 경제가 좋아질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다른 후보들은 그의 도덕성 문제만 부각시키는 내용이 주가 되었는데 (정동영 후보는 '우리 경제의 큰 형님인 대기업은 살아나고 있지만 둘째 형인 중소기업과 막내인 서민들이 살아나고 있지 못한 것이 문제다'라고 비교적 정확한 지적을 하였는데 불행하게도 그는 어떤 말을 해도 먹히지 않을 여당 후보였다.) 당시 이명박 후보가 주장했던 7%의 성장률은 모두가 달성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위의 크루그먼의 표현을 빌자면 '경제의 장기 상승 경향)이 기껏해야 4~5%인 상황에서 7%라는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리한 재정지출의 확대와 통화팽창라는 수단을 사용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정부 부채 증가와 물가상승이라는 후유증이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공약을 진심으로 달성가능하다고 믿지는 않았으면'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럴 경우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셈이지만 실제로 747 공약을 지키려할 경우 발생하는 부작용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최근의 행보를 보자면 일단 7% 성장이라는 공약은 포기한 듯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재정지출 확대와 통화팽창이라는 수단은 본래 경제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좌파의 이념에 부합하는 정책이다. 보수주의, 우파를 자처하는 한나라당이 이런 정책에 의존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그렇다고 손 놓고 있다면 더 문제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작은 정부의 의미를 그들 나름대로 새롭게 정의했으니 - 공무원 수를 줄이는 것으로 말이다 - 원래의 의미따윈 상관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큰 소리를 쳐놓고 당선이 되긴 했는데, 우리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가)는 단기 경기 파동의 하강 사이클을 지나고 있는 시기(를 넘어서 장기 불황이 될지도 모르지만)여서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온갖 욕은 다먹으면서 지지도는 바닥을 쳤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아마 비슷한 상황을 맞았을테고, 2008년의 경기 침체가 모두 그의 탓인냥 비난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후보 시절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며 거짓말(이었길 바란다.)을 했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보면 그렇게 부당한 것만도 아니다.
 
  아마도 지금이 최악의 상황은 지나가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전망대로라면 앞으로 남은 재임 기간은 지금까지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나라당이 차기 대선에서도 승리하고 재집권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할 것이다. 실제로 주가도 다시 상승하는 등 단기적으로 경제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전적으로 경제 상황에만 기인한 것은 아니겠지만) 지지율이 다시 상승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포스팅은 이것으로 마무리 짓고, 다음 포스팅에서는 감세가 경제의 성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사장된 보주주의 경제학 이론을 끌어들이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1. Paul Krugman, 김이수·오승훈 옮김 『경제학의 향연』, 부키, 1997, 141면 [본문으로]
  2. ibid., 160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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